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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格
#成人时代 #韩国抒情歌曲
地区
Korea 韩国

艺人介绍

姓名:李仙姬(Lee Sun Hee)

生年月日:1964.11.11

身高:158CM;体重:46KG;血型:O型

学历:仁川专门大学 环境管理学;延世大学校经营管理学院最高经营者课程修完。

兴趣:游泳、读书

特记:画画

经历:1991-1995 首尔市议员;2002.7~大学路Live 剧场代表理事

受奖:

1984:MBC 第5回江边歌谣祭 大赏;

1984:KBS 歌谣大赏 新人赏

1984:MBC 十大歌手歌谣祭 最高人气歌谣赏

1984:MBC 十大歌谣祭 本赏

1984:KBS 广播歌谣大赏 歌手赏

1986:第1回金唱片 颁奖式 本赏

1994:KBS 歌谣大赏 本赏

1999:第35回白象艺术大赏 人气赏 演剧部分

2001年 MBC 10大歌手歌谣祭 本赏

出道专辑:1984年1辑Album[J]

小简介

刚走红的新人男歌手李胜基的老师兼制作人,韩国著名女歌手李仙姬最近发表了第13张个人专辑。主打歌曲叫做《四春期》。今年已经年过不惑之年的李仙姬对这个《四春期》的题目解释道:小的时候,觉得人一到40岁,就会十分悲伤,现在真正到了40岁,却不这么认为。天空反倒显得更加广阔,看到路旁盛开的迎春花也会十分欣喜,仿佛迎来了人生的第二春。专辑的主要内容体现了「本以为40岁,女人的生命就结束了,没想到依然渴望爱情」这样的主题。去年是李仙姬出道20周年,愿本打算将这张专辑作为20周年纪念专辑於去年发行,但是录制之后,李仙姬精益求精,还是觉得专辑有需要改进的地方,因此推迟到今年发行。 专辑的所有歌曲全部由李仙姬亲自作词,作曲并演唱。

演唱《王的男人》OST——姻缘

가요제 출신 가수 중에 눈에 띄는 여성가수인 이선희. 보이쉬한 외모에 강한 힘이 폭발되는 가창력을 소유, 여린듯 하면서도 풍부한 음색은 이선희를 80년대를 주름잡던 대표적인 여성가수로 기억되게 한다.

1984년 이선희는 제 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받으면서 쏟아지는 관심과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당차게 가요계에 데뷔한다. 가요계의 두터운 팬층이 여자 중고생들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의 대부분을 독차지하던 남자가수 전성시대 아래에, 치마를 절대 입지 않으며, 마이크를 잡으면 상상할 수 없는 고음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그녀의 출현은 가요계는 물론 남자가수에만 빠져있는 여학교에도 신선함 바람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이선희는 마치 당시엔 찾아보기 힘들게 여학교에서 인기많은 남자같은 여학생처럼 수많은 여학생 팬을 대동하는 아이돌 가수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가요제 이후 상당한 인기를 몰고온 "J에게"라는 곡은 그해 라디오롸 TV의 가요프로그램을 휩쓸고,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는 신인상과 인기가수상 등을 이선희에게 안겨 주었다. 이선희는 이런 화려한 신고식을 치르고 그해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다.

1985년 "아! 옛날이여", "갈등" 등이 수록된 자신의 독집 앨범을 드디어 발표, 대성공을 거둔다. 이선희는 연이어서 발표한 2집 앨범에서 "갈바람", "괜찮아",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이 히트시키며 그녀의 인기를 따를 다른 가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또한, 1986년에 발표한 3집 앨범에서는 기존의 가창력에 보다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또 다른 개성을 선보이며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에 의해 만들어진 그녀의 대표곡 "알고 싶어요"를 통해 10대 소녀들이 일기장에 남모르게 쓰던 비밀같은 애틋한 감정을 잘 드러내어 여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그해 라디오를 켜면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누린다.

1988년 선보인 네번째 앨범에서는 "사랑이 지는 이 자리"와 "나 항상 그대를"과 같은 발라드 곡으로 인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와 함께 신중현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을 다시 불러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다시 한번 더 확인시키며 원곡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1989년에 발표한 5집앨범에서는 "나의 거리" 을 발표 자신의 인기를 다시 확인하고, 홍콩 BMG 레코드를 통해 '이것이 오리지날 송이다'라는 앨범에 "J에게"를 수록 발표한다. 이후 영어로 자신의 히트곡을 번안하여 부른 'Where The Love Falls...' 등의 앨범도 잇따라 발표하며 또 다른 계기마련에 힘쓰나 그리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한다.

한해 뒤인 1990년에는 여섯번째 앨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표, 이전에 소녀부대를 몰고다니는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이전과는 다른 성숙된 노래를 선보인다. 이렇게 90년대 들어서면서 변화된 그녀의 모습은 현대 국악 작곡자 중 대표적인 작곡가인 '김영동'의 노래만을 담아 국악적인 요소를 듬뿍담은 여덟번째 앨범과, 스스로 곡을 만들어 발표한 열번째 앨범을 선보이면서 판매고나 인기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음악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1991년에는 7집 앨범작업 중 서울특별시 시의회 시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었고, 92년 매니저였던 윤희중과 갑작스런 결혼발표로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결혼 후, 1993년엔 임신 중에서도 '애창동요집'을 발표했고, 출산 이후에도 1994년에 9집, 1996년에 10집앨범을 발표하는 등 그전의 인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음악활동을 쉼 없이 이어오고 있다.

인기전선에 물러나 있던, 1998년 붉어져 나온 그녀의 이혼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이선희의 가수생활에도 타경이 있었지만 주위의 구설수와는 상관없이 열한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생활엔 변화가 없음을 팬들에게 알렸다. 80년대외 비교할 수 없는 인기하락과 신곡의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서 심한 부상을 당하는 등의 악재 속에서도 어려움을 참으면서고 가수로 기억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계속이 된다.

2001년에 들어서면서 3년만에 발표한 12집 앨범에서는 새음반 발표와 함께 새로운 활동에 돌입, 새로운 활동의 서막을 알린다. 그녀의 음악인생의 총결산이자 새로운 출발의 신호이기도 한 새앨범 `My Life + Best`는 그녀의 예전 히트곡들과 함께 새로운 곡들을 함께 담아 발표했다. 자작곡인 "이별소곡"과 박진영 작사,작곡의 "살아가다보면", 유영석이 만든 "이 노래를 빌려서", 김종서 작곡의 "아마" 등 11곡의 신곡이 그녀의 변신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가요계의 흐름을 접목시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이선희의 노력은 오랜 동안 활동해온 우리 여자가수의 꾸준한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이선희는 1984년 가요계에 데뷔, 이후 줄곧 최성장의 인기를 누리며 90년대 초까지 가장 인기 있는 여가수였다. 80년대 후반까지 그는 전성기 시절 그 어떤 남자 가수보다도 여학생의 팬을 많이 몰고 다녔고 특히 귀여운 이미지와 보이시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그의 외모와 복장은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는 또한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최고의 가창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얻는다.

이선희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임성균과 함께 4막 5장이라는 팀으로 출전, 로 대상을 받는다. 이 노래는 가요제 이후에도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 이선희라는 스타를 탄생시킨다. 남자가수의 인기가 사실상 가요계를 휘두르고 있을 즈음에 바지를 입은 숏컷트의 이선희는 신선한 바람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1985년 4막 5장이라는 팀이 사실상 와해되고 홀로 데뷔를 한다. 데뷔 앨범은 , , 이 수록, 대단한 성공을 기록한다. 이선희의 인기를 가히 폭발적이었다. 각종 가요제와 순위 프로그램을 휩쓸었고 그 인기는 2집으로 이어졌다. 1985년 2집에는 , 등이 수록, 히트하며 그는 최고의 여자가수로 자리를 잡는다. 1986년에는 3집 이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 , 가 연이어 히트했고, 또한번 주요 상과 순위를 차지했다.

이선희의 음악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4집 앨범부터였다. 「사랑이 지는 이 자리/나 항상 그대를」(1988), 「나의 거리/5월(月)의 햇살」(1989), 「왜 나만/추억의 책장을 넘기면」(1990)으로 이어지는 4, 5, 6집은 모두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예전과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작곡가 송시현을 만나면서 노랫말과 멜로디에서 훨씬 서정성을 추구하며 한층 성숙된 음악으로의 욕심을 보인다. 당시의 히트곡들인 , , , 등은 그러한 스타일을 반영한다. 게다가 신중현의 원곡인 은 원곡과는 또 다른 시원하고 경쾌한 맛을 선사, 국민가요로 인정받으며 아직까지도 그의 각종 행사에서 그가 이 곡을 열창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선희의 인기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 정도가 많이 약해진다. 8집부터 10집까지 거의 2년에 한번 꼴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라이브 활동도 이어오지만 단 한 곡의 히트곡이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선희 개인적으로는 결혼과 이혼이 이어지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라이브와 뮤지컬 등의 영역에서 활동해온 그는 2001년에는 자신의 가수생활을 뒤돌아보며 새로운 작업을 곁들인 12집 「My Life + Best」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앨범에는 박진영, 김종서와 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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