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风格
#韩国 | 演歌
地区
Korea 韩国

艺人介绍

출생 1945년 09월 25일 / 목포, 대한민국

데뷰 (Debut) 1965년 (1집 앨범 '서울 플레이보이')

취미 음악감상

학력

-전라남도 목포 북교초등학교 졸업

-전라남도 목포 유달중학교 졸업

-전라남도 목포고등학교 수료

-서울 경복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가족 아내와 1남 3녀

신체조건 172cm

프로필

MBC 가수왕 수상 (1970 / 1971 / 1972)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66) / 지구레코드사 전속(68) / 거성레코드사 전속(74) / 제14대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 재직(92.1)

대표영화 :

형수/가슴아프게/ 울려고 내가왔나/ 별아 내 가슴에/ 사랑은 파도를 타고/

지금 그 사람은/그리움은 가슴마다/ 저언덕을 넘어서/ 친구/ 흑산도 아가씨

소속그룹 칠인칠색

홈페이지 http://www.trotnews.com/namjin/

팬카페 http://cafe.daum.net/namjinpan

남진은 나훈아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열며 소녀 팬의 우상으로 떠오른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이다.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1965년 스무 살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미남형에 중후한 로우(low) 톤의 보컬을 뽑아내는 그의 매력은 단숨에 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나훈아가 소박하고 구성진 민요풍의 트로트를 중심으로 레코딩을 했다면 남진은 세련된 외모답게 이국적인 감성을 갖춘 트로트를 선보였다. 당시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연상시키는 나팔바지 등의 의상에, 역시 그를 연상시키는 저음의 바이브레이션과 다리 동작 등으로 여고생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나갔다.

언론에서는 나이와 데뷔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남진과 나훈아를 라이벌로 규정, 연일 경쟁적으로 기사를 써 나갔으며 그 둘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8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곡을 녹음하고 히트곡을 만들어 낸 나훈아와는 달리 남진의 전성기는 주로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가수왕 등의 수상경력을 비롯, 각종 영화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임과 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가슴 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등, 그의 히트곡 대다수가 바로 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작품들이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그는 인기를 유지했다. `빈잔`, `정 때문에`등의 히트곡이 80년대 초반의 작품이다. 물론 70년대 중반까지의 폭발적 인기와는 달리 어느새 그의 인기도는 하락의 추세를 띄고 있었다.

남진은 80년대 후반과 90년에 들어서면서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라이브 활동 등으로 커리어를 이어나왔다. 2000년에는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을 내면서 신곡 `둥지`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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