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은 90년대 이래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는 음악인으로 단단하게 자리매김한 여성 싱어 송라이터다. 80년대 후반 데뷔 당시에는 아이돌 스타였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변신에 성공한 그녀는, 앨범과 소규모 공연, 퍼포먼스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보이지만 그의 음악적 행보는 늘 많은 이들이 눈길을 끈다. 1997년부터 '리채(Lee Tzsche)'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상은이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8년 강변가요제를 통해서였다. 를 부르며 신나게 탬버린을 흔들어대던, 중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꺽다리 여가수. 보는 이들의 눈길을 단번에 휘어잡는 그를 언제나 스타에 목말라 하는 연예기획사들이 가만 둘 리 없었다. 그는 온갖 매체들의 전면을 도배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인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쇼 비즈니스의 생리에 따라 1989년과 1990년에 1집()과 2집()을 연이어 발표하는 동안에도 영화 [굿모닝 대통령], [담다디]의 주연으로, 드라마의 특별 출연 게스트로,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게 된다.
이즈음 아이돌 스타로서의 생활에 지쳐가기 시작한 그는 1991년 미국 유학을 감행함으로써 대중들의 인기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데 성공한다. 그 해 겨울 발표한 3집 「더딘 하루」는 이후 그의 행보를 암시하는 앨범으로 대중의 기호에 맞췄던 이전의 곡들과는 완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싱어 송라이터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플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며 음악 활동을 병행, 1992년에는 프로듀서 김홍순과 함께 힙합 앨범 「Begin」을 발표하는가 하면 아시아 민간 문화교류 기구인 `크로스 비트 아시아'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일본 도시바 EMI의 눈에 뜨여 보다 넓은 활동 반경을 갖게 된다.
이어 1993년에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감성을 기반으로 보다 대중성을 가미한 5집 [Lee Sang Eun]을 발표,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으며 이 앨범에 수록됐던 은 2002년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95년 발표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잘 드러내주는 앨범으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를 현대화한 대표곡 를 통해 동양적 서정성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 앨범은 이후 이상은의 음악파트너로 활동하게 되는 프로듀서 하지무 다케다와의 첫 작업이며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보여준 정서는 1997년의 「외롭고 웃긴 가게」, 이름을 리채로 바꾸면서 발표한 「Lee Tszche」등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98년 그는 일본 영화 [파이팅 에츠코]의 영화음악(「Give It All」)을 맡아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She wanted」2000년)에서도 영화의 감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음악을 선보임으로써 영화음악으로도 그 영역을 넓혔다. 그의 음악은 꿈, 기도, 자연, 신화, 여성성, 영원과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담아 내면의 울림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후로는 명상 음악에 가까운 음악적 색채를 더해 2001년 「Endless Lay」등을 발표하였다.
한동안 대중적인 감성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자유롭게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그녀는,11집 신비체험(神秘體驗)에서 지금까지의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와 화해를 청하는 듯이 보인다. 철학적이고 관조적이던 세계관에서 한걸음 세상으로 나와 일상의 사소한 면면들에 대해서도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 트렌드와 동떨어진 곳에서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던 그녀가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새앨범은 이상은의 주된 정서인 어쿠스틱한 곡으로 시작한다. 첫 곡인 [Soulmate]는 오랜 음악친구 하지무 다케다의 어쿠스틱 기타에 기대는 서정적인 곡이다. 그 뒤로 들릴 듯 말 듯한 디지털릭한 노이즈는, 시대의 조류인 일렉트로닉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World is an Orchestra]나 [Winter song]과 같은 곡은 이상은의 동양적인 감성과 일렉트로닉한 사운드가 조화를이룬 유니크한 곡들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로부터 한걸음 나와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느껴진다. 봄향기 물씬한 예쁜 가사로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비밀의 화원], 에스닉한 리듬 위에 멜로디 라인이 아름다운 [Paradise], 달파란이 편곡과 프로그래밍을 맡은 하우스 리듬의 [Supersonic] 등은 부담없이 귀에 들어오는 곡들이며,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가사 위에 본격적인 앰비언스 계열의 음악을 시도한 [Mysterium]은 앨범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힐만 하다.
2005년 발표한 12집은 그 동안 일본과 홍대를 근간으로 한 인디씬에 그쳤던 활동무대를 팬들과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음악의 방향도 이전까지의 음악과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다소 어려웠다는 이상은의 음악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사의 내용과 멜로디가 밝아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의 특허라고 할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음악적인 실험은 여전히 다양한 악기를 접목한 편곡으로 시도되어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그녀의 음악적 표현을 한층 더 폭넓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13집 ‘The Third Place’는 약 1년 3개월에 걸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한일 공동 합작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한국 1세대 아이돌 가수였던 이상은을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나게한 6집 [공무도하가]의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Izumi Wada)’ 가 4 년 만에 이상은과 재회하여 이번음반이 나아가야 할길을 밝혀주었다. 이상은의 가장 오랜 음악적 동무인‘다케다 하지무(Takeda Hagimu)’는 그녀의 음악을 구체화 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특유의 진중함을 농도 짙은 색깔로 여러 곡들에 녹여냈다. 영화음악집단‘복숭아 프로젝트’로 활동하며, 최근 영화 ‘즐거운 인생’으로 이제는 한국 대표 영화음악 감독으로 인정받은 ‘이병훈(VOY)’은 11, 12집의 편곡과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하며 이상은이 2번의 한국대중음악 시상식, 올해의 여자 가수상을 거며지는데 일조 하였으며 본 앨범에서도 한국 프로듀서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한 폭의 그림에 채색을 하듯, 밝고 청명하면서도 감각적인 표현력으로 한 곡 한 곡을 완성해 나갔다. 그 외에도 동경과 오끼나와, 한국을 오가는 레코딩, 믹스 과정에는 Chara, Free Tempo의 음반에 참여한 일본 엔지니어 ‘토오루 오키츠(Toru Okitsu)’를 비롯하여 메시칸, 모로코 기타리스트, 집시 바이올린, 아프리카 퍼커션 등 실력있는 세션 뮤지션들이 각 곡을 작품으로서의 퀄리티로 높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