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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1首歌曲
두 사람이 있다. 아니 세 사람. 어쩌면 네 사람. 아니 열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물론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들이 말을 한다. 언뜻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중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을 뱉어 냈으며 누군가는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 어떤 때는 반대의 상황이 연출 되기도 한다.
허공에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떠돈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소음이 한데 뒤섞인 것만 같다. 그 때 한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귀를 틀어 막는다. 어딘가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떤다. 소리를 내지를 때도 있고 바닥을 구를 때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행동에 주목하지 않는다. 어느새 지친 듯 하다. 두 눈에선 초점이 사라졌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거칠었던 숨소리도 잦아든다. 너무 높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천장을 다시 바라본다. 새하얗다. 계속 바라본다. 어지럽다. 눈을 감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제외한 모두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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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남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일을 겪어도 상대와 나는 같지 않다. 말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며 기대했던 것들은 무너지기 일쑤다. ‘어긋남’은 제대로 채우지 못한 셔츠의 단추처럼 하나씩 밀려난 관계를 그렸다. 셔츠와는 달리,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 마음을 비워두는 수 밖에.
음악적으로는, 오래된 물건의 먼지를 털어낸 후 이리저리 섞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얇게 깔린 LP 노이즈, 허술하게 녹음된 드럼과 기타로 시작된 이 곡은 각자 따로 노는 듯한 앙상블에서 어느덧 조화를 이룬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적인 수식어가 떠오르는 곡 분위기와는 다르게 홀로 디지털 작업으로 완성했다. 이처럼 각 파트 연주들의 우연성이 주는 즐거움은 음악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