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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12首歌曲
때론 읊조리듯 때론 부르짖듯 말하는 삶의 이야기, 정형근
조용히 앉아 누구의 방해나 주변소음 없이 그저 스피커의 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것. 조금씩 답답하던 마음이 열리고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며 오래된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을 갖는 것. 그리고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화해와 용서의 기운이 생겨나는 것. 정형근의 노래를 듣는 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여정이다.
우리말이 갖는 운율적인 한계와 특징을 잘 이해하는 그의 가사와 포크와 재즈를 넘나드는 곡의 멜로디에는 듣는 이들을 소설 속으로, 수필 속으로 그리고 각자의 삶 속으로 이끄는 놀라운 힘이 있다. 필요한 만큼만의 소리와 편곡으로 감싸진 그의 음악들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음악에 있어서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며, 노래하는 이의 철학이 음악적 기교와 세련보다 감동을 주는 데 있어 우선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사실 필자는 그의 작곡과 글에 대한 재능을 국내의 어떤 뮤지션보다도 훌륭하게 평가하지만 이상하게도 정형근의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눈과 귀가 앨범 속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창밖이나 멀리 있는 산과 들, 그리고 오래된 사진들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음악은 우리를 순간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의 눈물을 이끌어 낸다.
정형근. 일반인들에겐 비록 낯선 이름일지 모르나 80년대 활동했던 국내 가수들의 음악적, 정신적 선배로서 그가 차지했던 위치는 대단했다.
전 인권은 `그는 우리시대 최고의 음유시인이며 그의 음악을 듣고 보는 순간 첫 경험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라고 했고, 故김현식은 그를 언더그라운드의 재야라고 했으며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는 `우리가 지하1층이면 그 형은 지하 5층이다` 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들이 정형근을 음악적 동료이자 선배로서 존경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당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음악과 뮤지션들 사이에 그의 음악이 단단하게 위치해 있었음을 느끼게 해줄 이번 음반은, 시대를 떠나 국내 음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봐야 할 명반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하고 힘든 하루살이에 나의 존재가 쓸쓸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이젠 더 이상 어떤 음악도 자신을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란 어딘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면, 정형근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