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감성답게 음악을 음악답게 만드는 뮤지션 Yoonhan [For This Moment]
어쩌면 윤한의 음악은 이미 익숙한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이건, 그가 부르는 달콤한 노래이건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는 이는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윤한의 음악이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을 반복한다거나 개성이 없다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음악은 팝이나 뉴에이지의 감성이 선사할 수 있는 감미로움과 따뜻함,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지만 음악이 발산하는 매력을 추상적인 언어로 규정할 때 자칫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완성도와 품격이 범박한 수준으로 격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장르, 비슷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장르이건 알짜와 쭉정이는 늘 섞여 있다. 당연히 그는 전자다. 그가 직접 가사와 곡을 쓰고 연주하고 노래한 12곡의 트랙이 이어지는 동안 그는 정갈한 연주와 보컬, 그리고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음반에 담긴 곡들은 연주 곡과 가창 곡이 섞여 있고 연주 곡과 가창 곡은 뉴에이지, 스무스 재즈, 어반 소울 스타일의 곡들이 두루 포진하고 있지만 이 모든 수록 곡들을 아우르는 것은 그의 탄탄하고 깔끔한 음악적 감각이다. 대중음악의 기본적 속성이 감성을 외화하고 발현하는 것이기에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그러나 슬픔보다 더 많은 슬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을 말하려다 보면 보컬이건 연주건 원곡이 품고 있는 에너지보다 넘치기 마련이다. 과잉이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품의 품격은 갈린다. 과잉 된 수사를 절제하고 정확하게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만 표현하는 엄격함을 가진 음악의 파장과 가벼운 음악적 실체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음악의 파장은 엄연히 다르다. 감동과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에너지의 양은 동일할지 몰라도 그 감흥은 극과 극이다.
윤한의 두 번째 앨범이 빛나는 것은 바로 그가 전자의 신중함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보컬을 통해 고음을 뽐내려 하지 않고, 격한 흔들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태도는 음악의 반주 역시 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미니멀한 스타일과 함께 그의 음악을 오히려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어낸다. 필연적으로 러브 송일수밖에 없는 스무스 재즈와 어반 소울 스타일의 음악 속에 사랑과 이별에 대한 통찰과 새로운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상투적인 사건들을 매개로 가볍고 손쉬운 감상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의 음악은 빛난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전하려는 메시지와 감성에서도 한 발 떨어져 있을 줄 아는 것이다. 분명 팝의 영역 안에 서 있음에도 모방과 반복으로 상투성의 늪에 빠진 팝과는 질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음악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역시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특히 문학이나 영화, 미술과는 달리 단어와 컷, 부분으로 분리되지 않는 음악의 속성상 어떤 멜로디와 사운드를 창출했는가 하는 것은 즉자적인 감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미학적 판단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윤한은 특히 대중적 반향과 공감을 생명으로 하는 팝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하는 뮤지션으로서 격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곱씹고 싶은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대중적이면서도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자존심에 근거한 음악은 그래서 윤한이 외모를 주 컨텐츠로 하고 음악을 맞춤 상품 정도로 구비하는 이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피아노 연주곡의 세밀하고 정감 있는 멜로디와 보컬 곡들의 고급스러운 사운드는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For This Momnent"의 서정적인 울림, "Cappuccino"의 어쿠스틱하고 유쾌한 전개, "When I Fall In Love"와 "Paris"의 담백하고 드라마틱한 서사, "From Paris To Amsterdam"의 완성도 높고 깊은 매력, 영롱하게 빛나는 "Because Of You"의 건반 연주, "Marry Me"와 "Kiss"의 친숙한 스타일, "그 사람이라서"의 매끄러운 흐름, 달콤하게 달라진 "Cappuccino (Acoustic Ver.)"의 변화, 마지막 곡다운 "Travel"의 잔잔한 멜로디는 모두 윤한의 다양한 색깔과 일관된 지향을 보여준다. 감성을 감성답게, 음악을 음악답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자신이 하려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음악을 자신답게 만들어 낼 줄 아는 뮤지션이다. 아직은 생경한 이름이지만 어디로든 닿을 수 있는 노래다. 바람이 불면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노래는 물결처럼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