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폐관을 앞둔 클럽 쌤(쌈지스페이스 바람)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한 공연이 열렸다. 그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날, 할로우 잰도 오랜만에 무대에 섰다. 할로우 잰이란 밴드를 알리는데 많은 도움을 줬던 클럽 쌤을 위해 원년 멤버들이 일시적으로 모인 것이었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선정되고, 2006년 12월 첫 정규 앨범 [Rough Draft In Progress]를 발표하면서 수많은 찬사와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던 할로우 잰은 당시 잠정적인 활동 중단, 혹은 반(半)해체 상태였다. '마지막'이라는 의미와 미래가 불투명하던 밴드의 상황이 맞물리며 그날의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수없이 불렀을 "희망을 잃고 쓰러져 가도 언젠가 다시 되돌아온다 / 똑같은 삶, 똑같은 꿈, 언젠가 다시 되돌아온다"(Blaze The Trail)란 노랫말은 어느 때보다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의 공연은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작용했다. 단 한 번 합주를 하고 오른 무대는 생각 이상으로 편안했고, 과거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재결성에 대한 실마리가 되었다.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고 다시 함께 밴드를 하기로 결심한 임환택(보컬)과 이광재(기타), 정동진(베이스) 기존의 멤버에 서한필(기타), 류명훈(드럼), 김성출(FX)이 가세하면서 할로우 잰은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활동 재개를 선언한 할로우 잰은 네이버 '온스테이지' 촬영을 하고,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며 건재를 과시했다. 온스테이지 영상은 낯선 음악임에도 수많은 댓글과 함께 회자됐고,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는 끊임없는 '써클 핏(circle pit)'을 비롯해 다양한 장관을 연출해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햇수로는 무려 8년 만의 음반이다. 활동을 재개한 뒤로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팬들의 애를 태웠던 두 번째 정규 앨범 [Day Off]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부제가 붙어있긴 하지만 [Day Off]의 수록곡들은 'Day 0'로 시작해 'Day 7'로 끝난다. 그리고 그 각각의 날들에는 각기 다른 죽음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Day Off]는 '죽음'을 주제로 한 콘셉트 앨범이다. 그 안에는 가사를 전담해서 쓰는 임환택의 실제 경험담과 상상 속의 이야기들이 아프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앨범의 첫 곡인 'Day 0'는 채 2분을 채우지 못하는 짧은 곡이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러 죽음을 기리는 듯한 진혼의 종소리는 전설처럼 얘기되는 할로우 잰의 3인치 싱글 [Hyacinthus Orientalis Of Purple](2005)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표제곡이자 마지막 곡인 'Hyacinthus Orientalis Of Purple'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종소리는 새 앨범의 첫 곡 'Day 0'로 연결된다. 이는 할로우 잰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할로우 잰 음악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이 새로우면서 여전하기도 한 할로우 잰의 새 노래들은 우리가 처음 할로우 잰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그대로, 아니 더 배가해 전해준다. 가령 13분여분의 시간동안 이어지는 'Day 2'는 포스트 록을 즐겨 듣는 이들에겐 익숙한 형식의 곡이지만 곡의 절정부에서 전해지는 벅찬 감동은 그 어떤 포스트 록 혹은 익스페리멘탈 밴드들의 이름을 갖다 붙인다 해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이것은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직접 듣고 보는 수밖에는.
[Rough Draft In Progress]에는 'Empty'라는 곡이 수록돼있다. 라이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곡으로 하드코어 팬들에겐 송가와도 같은 곡이다. 하지만 [Day Off]에는 이런 스타일의 곡들이 모두 배제됐다. 'Empty'보다 더 '빡센' 곡이 완성돼있긴 했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분위기를 위해 그런 곡들은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그렇다면 남은 곡들은 우리가 음반과 라이브를 통해 숱하게 감동 받고 뭉클해졌던 그런 노래들이다. 온스테이지 영상을 통해 이미 익숙해져있는 'Day 7'은 친한 친구의 죽음을 노래해 더욱 처절하게 들리지만 다른 날들의 죽음 또한 그 감정의 깊이나 비극적인 분위기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죽음 뒤의 우주를 그리고 있는 'Day 6'는 김성출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새로운 형식의 곡이지만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 자연스레 앨범 안에 녹아들어있다.
무대 위에서 마치 만신(萬神)이나 영매(靈媒)가 된 것처럼 노래하는 임환택의 보컬 역시 이 죽음이라는 주제와 바로 맞닿으며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모든 죽어가는 것을 노래한다. 옛 우리말을 사용하려 애쓰며 적어 내려간 노랫말 역시도 음미해볼 만하다. 죽음은 앨범 안의 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할로우 잰 음반의 모든 아트워크를 책임졌던 정규혁이 다시 한 번 디자인을 맡아 할로우 잰의 이야기들을 각기 다른 죽음의 이미지로 완성했다. 두 달여간 할로우 잰의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그림을 완성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이 작품들은 3월 2일에 있을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어느 글에선가 나는 할로우 잰을 가리켜 "처절하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Day Off]는 그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앨범이 될 것이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표출하던 그 모든 슬픔과 고통과 아름다움과 여운이 이 앨범 한 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