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시작해서 여름으로 끝난다. CHS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정글사우나]는 다른 계절들을 지나 여름으로 돌아왔다기보다, 남국의 기후처럼 내내 한 계절의 정서를 담은 음반이다. 다행히 [정글사우나]의 여름은 질리지 않는 계절이다.
CHS를 모른다. 전혀. 그들이 스스로 정의내린 장르 ‘트로피컬 싸이키델릭 그루브’는 단어조차 생소하다. 대신 들어보면 이들이 어떤 순간을 복기하려는지 만큼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여름, 그중에서도 해변. 뙤약볕의 그늘과 같은 야자수 아래서 이슬 맺힌 음료를 마시던 남국에서의 시간. 세월아 네월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음료가 바닥을 보일 즈음, 노란색으로 이글대다, 주황색과 섞이며 보라색까지 촘촘히 쌓이다 어두워지는 황혼에 압도당하는 걸 즐기는 순간의 마음. CHS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들이 설명해준 적도 없지만 [정글사우나]를 들으며 떠올린 나의 감상은 이렇게 목가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CHS의 음악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때, ‘나만 아는 밴드’ 같은 말 대신 ‘너도 아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장르나 음악에 사용된 악기의 소리는 생경할지라도, 누구나 여름의 해변은 알고 있고, 바다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활짝 열려있으니까. [정글사우나]는 그래서 익숙한 음반이다. 장르가 무엇이고, 작법은 어떻고 음반에 대한 수학적인 설명을 찾기에 앞서 다만 듣고, 느끼는 게 이 음반을 제대로 즐기는 방식일 것이다.
누구나 남국에 자주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곳을 떠올리거나, 그리워하는 건 매일 할 수 있다. 운전 중에도, 애인과 침대에서도,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들을 수 있고, 어디서나 CHS가 연주하는 여름은 견고하게 들린다. 휴양이 꼭 탈출이나 도피일 필요가 없듯이, 오늘도 [정글사우나]를 들으며 한여름의 풍경을 떠올렸다. 거기엔 이 음반을 듣는 당신도 함께였으리라. 그 또한 자연스럽게.
– 양보연 [데이즈드] 피처 에디터
[Credti]
Saxophone 김오키
Keyboard 김태윤, 김나언
Bass 노선택
Flute 이규재
Chorus 김도연, 서현아, 이승민, 김민주
Recorded by 이성록 @청홍 스튜디오
Mixed by 이성록 @청홍 스튜디오
Mastered by bk! at GLAB Studios
Artwork by 김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