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2辑《2.0》
십센치 2집 [2.0]
‘분명히’ 10cm(십센치)는 이 시대 하나의 아이콘이다. 질펀한 가사와 달콤한 멜로디로 우리들을 사로잡은 전대미문의 듀오 10cm. 인디 신에서 튀어나온 이 엉큼한 2인조는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됐다.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아메리카노’로 이름을 알린 2010년에는 홍대 신의 ‘통기타와 젬베’ 열풍을 설명하는 척도였고, 작년 2월에 나온 정규 1집 [1.0]으로는 소속사도, 별 홍보도 없이 하루 만에 초도 1만 장을 매진시키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MBC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에 출연한 뒤에는 자연스레 전국구 스타가 됐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을까? 그 대답은 우리의 가슴을 간지럽힌 이들의 음악에서 찾을 수 있겠다.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듣고 미소 짓지 못한다면 당신은 얼마나 메마른 삶을 살아온 것일까? 10cm의 노래는 10cm답게 강했다.
10cm는 이제 그 활동 무대를 어느 한 곳으로 가둘 수 없을 만큼 거물급 스타가 됐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고, 1집 [1.0]은 무려 3만 장이 넘게 팔렸다. 유명 가수들도 채우기 힘든 올림픽홀, 블루스퀘어 등의 공연장을 차례로 매진시켰으며, 전국투어도 성황을 이뤘다. 최근에는 각종 싱글 및 피처링 곡으로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아이돌그룹을 제치고 상위권에 오르기도 한다. 대중들에게는 슬슬 ‘10cm 풍’의 멜로디가 각인됐다.
이쯤 되면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을 법하다. 10cm 본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지지리 궁상이든, 욕정을 드러내든 간에 자신들의 순수한 이야기를 던지려 했다. 그런데 2집 [2.0]을 감상해보면 이들이 애티튜드 외에 음악적인 욕심이 생겼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2.0]에 담긴 음악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성숙해진 10cm다.
첫 곡 ‘그대와 나’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기타와 보컬만으로 이별을 진지하게 그리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다. 특히 소박한 연주와 노래는 최근의 트렌디한 인디 포크보다는 80년대 가요의 진득한 감성이 느껴진다. 복고풍의 감성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마음’에서는 10cm가 존경하는 세시봉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피아노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Fine Thank You And You?’에서는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올드팝 사운드가 귀를 잡아끈다. 이 곡에서는 60년대 비틀즈의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빈티지 악기와 마이크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2집에서는 음악의 장르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어법이 한층 유려해졌다. 라 벤타나가 함께 한 ‘한강의 작별’에서는 탱고의 감성과 권정열의 끈적대는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과거 10cm의 ‘뽕끼’에서 키치가 느껴졌다면, 이 곡에서는 성인가요의 농익은 무드가 잘 살아있다.
기존에 10cm가 보여줬던 감각적인 멜로디와 가사도 여전하다. ‘고추잠자리’에서는 권정열의 달달한 노래와 앙증맞은 뮤트 트롬본 연주가 대화를 나누듯이 어우러진다. ‘그러니까’에서 눈물을 삼키는 듯한 절절한 감성 위로 ‘난 최고 멍청이’라고 노래하는 수더분함이 10cm답다. 또한 2집에서는 10cm의 골수팬들이 앨범에 담기길 고대해왔던 곡 ‘Corona’를 만나볼 수 있다. 기존에 기타 한 대로 연주되던 것과 달리 클라리넷과 드럼의 브러쉬 연주가 더해져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섬세한 악기 편곡은 이전과 다른 10cm의 성숙해진 모습이다. 한편 야한 가사가 일품인 ‘냄새나는 여자’, ‘오늘밤에’에서는 엉큼함을 고수하는 10cm의 뚝심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오늘밤에’에서는 10cm가 처음 시도하는 댄서블한 비트와 윤철종의 내레이션 연기도 만날 수 있다.
10cm의 음악은 ‘분명히’ 성장 중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타이틀곡 ‘Fine Thank You And You?’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 친구를 탐하던 짓궂음이 떠나간 연인에 대한 애틋함으로 바뀐 것. 특히 이 곡의 가사는 30대로 접어드는 10cm의 변천사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가사의 변화, 그리고 악곡의 다채로움은 기존 10cm의 팬들에게 생경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음악 앞에 진지해지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행위다. 이 앨범을 처음 듣고 그 음악들이 10cm답지 않다고 느꼈다면, 다시 한 번 집중해서 들어보길 바란다. 우리의 가슴을 간질이던 그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